10월이 시작되기 전 모니터 너머의 벽에 '개발 공부 시작'이라고 쓴 종이를 붙여뒀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에 적게는 서너시간, 많게는 여덟 시간이 넘게 개발을 공부했다. 그리하여, 나는 분명 처음보다는 더 나은 실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마저도 대학교에서 1학기를 수강한 이들의 실력 정도 되겠지만 말이다.
이제 모 교육 업체의 프리 코스 수료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같은 교육 업체의 부트캠프에 지원했고 조기 테스트를 봤다. 정원 마감이 임박했다는 메시지에 조금 초조해진 탓이었다. 이틀 만에 나온 결과는 탈락이었다. 두 개의 문제 중에 하나의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래도 풀이 과정을 본다면, 어느 정도 근접했을텐데... 아니면, 그간의 코드 리뷰에 제대로 피드백을 수용하지 못해서일까. 혹은 그저 소수의 정원이 모두 마감된 것일까.
사실 근래에 부쩍 많아진 번역 일을 하며 동시에 개발 공부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일쑤였고, 평일이든 주말이든 가리지 않고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두 달이 지났다. 그리고서 오늘 받게 된 최종 결과가 담긴 '죄송하지만, 함께 할 수 없다.'는 정중한 거절의 이메일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전 같았으면 상심이 컸을 이러한 과정과 결과의 반복에 이제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 하더라도, 그것이 결국 누군가가 보기에는 실패라 할지라도 말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거절'당했을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물론, 실력이 부족했던 탓이 컸겠지만, 그렇다고 내 탓만을 하지만은 않는다. '거절'이라는 다소 객관적인 피드백으로부터 배움을 얻고 나아가면 되는 거 아닐까. 어쩌면 도전하기를 멈출 때, 그 때가 바로 최종적으로 실패하는 지점은 아닐까.
나는 왜 늦은 나이에, 전공과도 전혀 무관한 개발을 배우고 싶어했을까. 나는 개발이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가장 힘있게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언어라 생각한다. 솔루션에 대한 당위적 외침, 관념적 자기 만족적 글쓰기가 해결하지 못하는 실제적 문제 해결을 개발 언어는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의 벽은 높고,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좋은 개발자가 되는 것도 어렵지만, 어쨌거나 힘있는 논리적 글쓰기의 연장선에서 개발을 바라봤던 것이 공부 시작의 동기였다.
노력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괜찮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때까지 계속해서 도전하면 된다. 거절당했다.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닌 또 다른 거절 앞에서 기록을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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