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지는 오래되었다 할 수 있지만, 또 글을 쓴 것도 아니라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작가라 생각한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스로를 작가라 생각했던 적은 딱 한 번, 제 이름을 걸고 독립 출판물을 만들어 냈을 때였습니다.
작가와 독자
독립 출판물을 처음 냈을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고 진솔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죠(ㅎㅎ).. 시간이 지나고 살펴보니, 참 제 입장에서 제 말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으며 작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독자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켜 봅니다. 독자가 봐주지 않는다면 애써 '책'으로 묶어낼 이유도 없다 할 수 있으니까요. 다음은 책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에 등장하는 강신주 작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많은 저자들이 글쓰기를 말 걸기라고 정의한다. 자신을 향해 쓰는 글이란 없다. (...)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글쓰기의 근본 동력이다. 주장이나 목적의식이 뚜렷한 글은 더 말할 나위 없겠지만 자기 고백적 글쓰기도 상대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말 걸기가 되려면 독백이 아닌 대화를 통해 상대와의 공명이 이뤄져야 한다.
강신주는 책을 쓸 때 항상 두 단어를 염두에 둔다.‘애정’과 ‘정직’이다. 애정은 자신의 책을 읽을 독자들의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는 걸 말하고, 정직이란 자신이 진짜로 느끼고 생각하는 걸 글로 써야 한다는 걸 말한다. 독자들을 유혹해 돈을 벌려고 글을 써서는 안 되고, 자신이 옳다고 느끼지 않는 것을 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자에 대한 애정과 자신에 대한 정직만 있다면, 누구든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저자가 될 수 있다. (...) 아울러 상처와 치부를 감추지 않는 정직한 글이 가장 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도 배웠다.
책이라는 상품
책은 읽히기 위한 것, 팔리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상품적 지위를 갖습니다. 여기에 '많이'라는 수식어('많이', 읽히고, '많이' 팔리기)를 뺀다면, 읽히고, 팔리기 위한 책이 아닌 책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제대로된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책을 상품으로 평가 절하시키는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초보 작가들에게는 이런 접근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책=상품으로 본다고 해서 독자가 책에서 기대하는 욕망과 기대가 바뀌는 것도 아니기도 하구요.
그러므로 작가가 고민해야 할 것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되, 그것을 읽는 독자를 위한 글을 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앞서 이것이 왜 책이 되어야 하는지, 또 어떤 책이 되기를 원하는지 정리해야 겠죠. 다음은 같은 책에 나오는 정여울 작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내용이 있는가’라고 물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행위의 도구일 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지고지순한 목적은 아니다. ‘글을 쓰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게을리하면, 그 순간 글쓰기는 그 자체로 맹목적인 행위가 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글이 막히는 이유는 쓸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빤한 말 하지 않기
여러 인터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정희진이었는데요. 그녀는 글과 책을 쓸 때 빤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글이 참신하고, 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아닐까요?
‘빤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소재가 떠오르면 첫 번째로 그 소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들을 노트에 목록으로 만들어둔다. 예컨대 글의 소재가 복지라면 ‘복지가 늘면 게을러진다’, ‘복지가 늘어나면 성장이 둔화된다’ 같은 말들을 적어놓는다. 그런 다음 통념적인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두 번째는 자신이 아는 가장 까다로운 독자가 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고 쓴다. 정희진이 말하는 ‘가장 까다로운 독자’는 실제 그의 지인이다. 가상의 독자든 실제 독자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글을 쓸 때 평균적인 독자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중은 동질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자신이 몰랐던 것에 대해 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는 글은 낭비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거나 내가 변화할 수 있어야 해요. 이미 아는 걸 쓰면 글이 진부해져요. 그래서 저도 한국 사회의 통념이나 기존의 논쟁 구도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책 쓰는 방법
이상을 정리해보자면, 책을 쓴다는 건 '특정한 생각과 이야기, 정보를 독자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엮어 제시'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책을 쓰느냐에 따라 '작가만의 진솔함, 문체, 분위기' 등이 여기에 추가적으로 포함될 수 있지만, 핵심은 '주제와 전달 방식'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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