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후기: 3편. 워홀을 가는 이유와 워홀러라는 신분
해마다 수많은 이들이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한국 뿐만이 아니다. 참가자 모집에 제한을 두지 않는 호주에는 매년 20여만 명의 청춘들이 몰려든다. 비자 발급 순위를 보면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대만, 일본 등의 순서인데, 이 여섯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70퍼센트가 넘는다. 이들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올까?
글쎄. 모든 이들을 인터뷰 해보지 않아 다음의 대답으로 한정지을 수 없겠지만, 이제껏 만났던 워홀러들과 또 이름 모를 이들이 남겼던 여러 블로그를 보면서 생각해 본 결과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목적은 크게 다음 다섯 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1. 여행: 넓은 땅 호주를 여행하러 온다. 호주 내 여러 지역을 옮겨가며 지내기도 하고, 로드 트립 혹은 타 국가로의 여행을 준비할 자금을 모으는 부류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한국에서 최저 시급을 받으며 여행 자금을 모으는 것보다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시급이 높은 호주에서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현재 호주의 최저임금은 18.93불로 한화 약 1만5420원에 해당한다. 2018년 대비 10%가 넘게 오른 한국의 최저 시급 8,350원에 비해 50퍼센트 이상 높은 금액이다. 물론, 일자리 구하기가 더 힘들 수 있고, 문화적 이질감, 현지 체류비까지 감안한다면 한국에서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여튼, 여행이 목적인 부류로 워킹홀리데이 그대로 일하면서(Working) 여행과 휴가(Holiday)를 경험하려는 이들이다.
2. 경험: 사실 경험의 정의는 두루뭉실하다. 무엇을 하든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워홀에 별로 기대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20대의 청춘에 1년 정도 새로운 경험을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호주에 오는 경우다. 어떤 일을 하며, 어디에서 살고, 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내가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던 건 한국과 다른 현지 문화, 그들의 사고 방식, 새로운 일과 그 일을 하는 방식, 셰어하우스에서의 삶, 외국인 친구 사귀기, 배낭 여행 등이었다.
3. 돈: 앞서 말했듯 호주는 돈 벌기 좋은 곳이다. 물론 많이 시급이 센 곳에서, 많이, 아주 많이, 일해야 한다는 당연한 전제가 있다. 정말로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면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 곳으로 가서 현지의 농장과 공장, 광산 등에서 일하는 게 좋다. 소위 말하는 시티에서 생활한다면 돈은 최저시급인 경우가 많으며, 번 돈의 대다수가 생활비로 나간다. 생각보다 거주비가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워홀러는 셰어하우스에 들어간다. 거실에서 생활하는 거실 셰어는 물론, 한 방에 서 너 명이 함께 쓰는 일명 닭장 셰어도 있다. 셰어하우스에 머물기로 한다면, 호주에서 어떤 일을 하든 방 값은 넉넉히 낼 수 있으니 도시에서 돈을 모르여 너무 애쓰기 보다는 삶의 질을 조금 챙기는 것도 좋다.
4. 영주권: 영주권을 목표로 워홀로 호주에 오는 이들도 있다. 본격적인 영주권을 신청하기 전에 사전탐방의 시간을 갖는 이들도 있으며, 때로는 기술 이민 등을 목표로 영주권 따기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주변에서도 몇 케이스가 있었는데, 무척 힘들도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물론 의외의 영역?에서 일이 풀려 호주인과 결혼을 하게 되면 또 달라지는 얘기다.
5. 영어&어학연수: 이 부분은 경험 영역에도 넣을 수 있겠지만 사실 영어라는 부분이 꽤나 적극적인 학습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따로 빼봤다. 호주니까 다 영어를 쓴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많은 워홀러들은 한국 사장 밑에서 일하며 영어보다 한국어를 많이 쓰기도 한다. 또한 고용주가 한국인이 아니며, 직원들이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육체 노동의 경우에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 실력이 목표인 케이스는 대부분 소위 말하는 오지잡을 구하려고 하는 거 같다. 또, 랭귀지 익스체인지나 각종 문화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어학연수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이상을 정리해보자면 일반적인 워홀의 목적은 여행, 경험, 돈, 영주권, 영어 정도가 될 거 같다.
다음으로 이야기 해보고 싶은 건 워홀러라는 신분이다. 워홀러는 일을 하며, 현지 문화를 경험하고, 여행까지 하는 자유로운 존재로 표현되곤 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하고 목격한 바로는 워홀러=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보다 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워홀러가 받게 되는 비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현지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대부분 그 기한은 1년으로 한정된다. 문제는 기간에서 발생한다. 현지에 도착하고 정착을 하면 어느새 1,2개월이 지난다. 또 대부분의 워홀러들은 비자 마지막 1,2달을 여행을 하기 위해 비워두기 때문에 남은 기간 동안 일을 계속 한다해도 8-10개월 남짓이다. 그런 워홀러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기술을 갖고 있다할지라도,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만 일해도 괜찮은 소위 말하는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개선되기는 했지만, 워홀러의 목적은 인력이 부족한 호주 전역에 단기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를 위해 한 고용주 밑에서 6개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또한 워홀러는 현지인에 비해 영어 실력이 떨어지고, 아시아권 워홀러의 경우는 유럽 출신의 워홀러들에 비해 문화 차이도 크게 나타난다. 이는 단지 인식의 차이 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나타나는 부분이라서 호주 백인 고용주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유럽 출신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 물론, 이건 고객을 상대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업종에 한정된 경우고, 농장이나 공장 쪽으로 빠지면 일 잘하는 아시아인들이 대다수며, 이들 또한 상대적으로 부지런한 아시아인들을 선호한다. 이렇게 적고보니 너무 일반화를 하는 거 같지만, 이력서를 내러 농장과 공장에 가면 어디에서 왔냐 물어보곤 했고, 한국에서 왔다면, 'You must be a good worker'라는 말을 듣곤 했다.
흔히들 워킹홀리데이를 갈 때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라고 말한다. 나태해질 수 있다며, 시간을 그냥 날려버릴 수 있다며. 난 그 이야기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목적 의식없이 청춘의 1년을 경험만을 위해 허비할 마음 가짐을 가질 수 있는, 또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한국에 돌아오면 취업이니, 진학이니 하는 문제 앞에서 또 다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할테니 말이다.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선에서, 하고 싶은대로, 내 맘대로, 나만의 워킹홀리데이의 길을 그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를 위해 워홀러=외국인 이주 노동자라는 인식을 갖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온다면(어차피 떠나오면 그렇게 느끼게 되지만), 너무 무리한 목표를 세우거나 지나치게 큰 기대를 갖고 떠나와 크게 실망하는 경우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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