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후기: 5편. 타즈매니아 여행을 준비하다
타일 일을 그만두고서 신기했건건 잃어버렸던 아니,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몸의 감각들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작 3개월 가량 타일 데모도 일을 했는데 이 모양이었으니 아마 좀 더 무리했다면 몸이 망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주 5일, 하루 8-9 시간을 일한 셈이니 나름 고강도기는 했다. 물론 이를 평생 업으로 삼고 하시는 분들도 있으니 이건 그냥 엄살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함께 일하는 형님과 사장님이 좋으신 분들이라 그런 힘듦을 감수하고도 충분히 일 할만 했다.
백수가 되어 맞는 멜버른의 아침 햇살은 아름다웠고 그간 좀 모아놓은 돈도 있다보니 삶이란 게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구글 맵을 켜고 안 가본 공원에 가보거나 박물관, 갤러리, 전시회에 들락거리고 사진을 찍던 나날을 보내던 중 영화 <와일드>를 봤다. 머물던 셰어하우스에는 큼지막한 신형 텔레비전이 있어서 나와 J, 그리고 또 다른 J는(생각해보니 나까지 이니셜이 트리플 J다) 주말 저녁이면 함께 영화를 보곤 했다. 그런데 그 날은 평일에다가 다들 일터로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어느 오후였고, 재밌는 프로그램 뭐 없나 싶어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방영 중인 <와일드>를 홀로 보게 됐다.
<와일드>를 보고 많은 이가 그랬을 것이듯, 영화를 보고 나니 나도 여행이 떠나고 싶었다. 장소를 물색하던 중 타즈매니아가 눈에 들어왔다. 워낙에 땅 덩어리가 큰 호주를 여행하려면 차가 필수였는데, 차 타고 달리는 로드 트립 보다는 배낭을 메고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한국보다 규모가 작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타즈매니아가 바로 제격인 거 같았다.
도보 여행이다 보니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타즈매니아여도 그곳을 도보로 여행하는 이는 많지 않은 거 같았다. 생각해보면 메인랜드보다 작은 규모일 뿐이었다. 제주도 한바퀴도 걷기 힘든데, 타즈매니아는 제주도보다는 훨씬 컸다. 다행히도 내게는 해외 여행의 길라잡이 구글 맵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루에 얼만큼을 걷고, 끼니는 어디서 어떻게 해결할 것이고, 또 잠은 어디서 잘 것인지 하는 대략적인 계획을 짤 수 있었다. 하루에 걸을 길이는 관광지보다도 슈퍼의 위치에 따라 결정됐는데, 한국 국토의 50% 정도 되는 크기의 타즈매니아의 인구는 50만이었고, 그 때문에 음식을 구할 수 있는 슈퍼는 듬성듬성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호바트에서 출발해 포트 아서, 마리아 섬, 콜스 베이, 프레이시넷 등을 거쳐 비체노까지 가보기로 했다. 어디까지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이렇게만 해도 3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다.
호바트로 가는 항공권을 끊고 셰어하우스 주인 J에게 떠나야 할 거 같다고 말하며, 노티스를 줬다. 집 주인이었던 J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차를 타고 근교 여행도 여러번 다녀왔고, 함께 저녁도 먹고, 영화를 보고, 맥주와 와인을 참 많이도 마셨는데.. 이제 아마 그와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떠난다는 말에 J는 조금 당황하는 듯 하면서도 이내, 자신도 타즈매니아에 가보지 못했다면서 잘 다녀오고 다시 멜버른에 돌아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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