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후기: 4편.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멜버른의 데모도
일주일간 머물렀던 시드니를 떠나 멜버른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시드니에서 머물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멜버른에 가게 된 이유는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2015년, 영국의 매거진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멜버른을 선정했다. 도시 경제가 안정적이고, 문화 수준도 높고 환경도 좋고 교육, 인프라도 잘 되어 있다고 무려 100점 만점 97.5점을 멜버른에 준 것이다. 물론, 그건 나처럼 이주 노동자가 아닌 자본이 어느 정도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지만, 그때는 내게도 뭔가 콩고물이 떨어지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멜버른은 시드니보다 여유롭고, 무엇보다도 햇살이 좋았다. 그 사실만은 무척도 만족스러웠지만, 정작 중요한 일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구직 사이트 검트리와 SEEK.COM을 오가며 이력서를 뿌려댔는데, 간혹 가다 전화 인터뷰를 할 때면, 워킹홀리데이 1년짜리 비자 때문에 힘들겠다는 말과 함께 대화가 끝나기 일쑤였다. 그럴 거면 애초부터 왜 전화를 줬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워홀러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요식업, 쇼핑몰, 청소 업체, 그리고 건설 현장 일이 대부분이었다.
구직 활동이 2주가 넘어가자 수중에 모아 놓은 돈도 다 떨어져 버렸다. 어디서든 일단 일을 시작해야 했고, 그렇게 호주의 어느 공사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지원하면 다음 날부터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는 타일 일을 시작했다. 타일 일은 이제까지 했던 아르바이트 중 가장 고된 편에 속했다. 타일을 붙일 때 쓰는 글루를 말아 갈 때면 숨을 참아야 했고, 그라인더로 타일을 자를 때면 얼굴에 튀기는 파편을 잘 피해야 했다. 타일을 나를 때면 어깨와 허리가 욱신거렸지만, 이건 그나마 위험 변수가 가장 적은 일이어서 가장 할만한 일이기도 했다.
나를 고용했던 사장님은 음악에 무척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다. 3개월 간 타일 일을 하면서 -타일 기술을 배울 생각도 없었거니와- 나는 사장님으로부터 음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더럽고, 먼지 날리는 공사 현장에서 음악 이야기를 그것도 3개월 내내 듣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사장님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직접 연주도 하셨는데, 그때 전수 받은 블루스에 관한 이론을 직접 시도해 보고자 나는 기타까지 사게 됐다. 사장님은 지금은 타일 일을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기업에 다니시다가 호주에서 음악 대학원을 나온 분이셨고, 그래서 꽤나 전문성 있는 음악 이론들도 거침없이 쏟아내곤 하셨다.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영화에서나 보던 악보 없이 흘러가는 즉흥 연주 이야기를 들을 때만큼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곤 했다.
데모도의 일과는 그랬다. 아침이면 점심때 먹을 도시락을 준비하고, 글루와 그라우트가 가득 묻은 더러운 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현장에서는 타일을 나르고, 그라인더를 치고, 타일을 나르고, 글루를 말았다. 가끔 그라우트를 넣기도 했다. 어이없게도 나는 그런 삶에 만족감을 느꼈다. 매일 밤 고된 몸을 누이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으며, 쓸데없는 고민들은 하나도 없었고, 삶에는 활력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평생 타일 일을 하면서 살지 않을 거라는 사실과 여기서 모은 돈을 가지고 조만간 여행을 떠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주 5일, 일 9시간, 타일 데모도 일을 하며 멜버른에서 3개월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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