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후기: 6편. 타즈매니아 도보 여행기
처음 계획은 호바트에서 비체노정도까지 가는 거였지만, 중간에 연어 공장 인터뷰가 잡혀 마리아 아일랜드를 거쳐 프레이시넷 국립 공원까지 걷는 걸로 여정이 마무리 됐다. 시간 많은 여행자였기에 대부분의 이동 경로도 모두 걸어다녔지만, 만약 다시 여행하게 된다면 해당 구간들은 버스 등으로 대체하고 트래킹/캠핑 장소에서 트래킹 위주로 여행할 것 같다.
8월 23일(1일 차)
Port Arthur -> Fortescue Bay Camping Ground
하늘은 맑았지만, 이따금씩 빗방울이 흩날렸다. 자동차 도로 옆으로 난 갓길에서 걸었다. 차와 같은 방향으로 걸을 것인가, 차와 반대 방향으로 걸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차와 반대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뒤에서 오는 차는 볼 수 없지만, 앞에서 오는 차는 볼 수 있으니 사고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거라는 논리 때문이었다.
포트 아서에서 포티스큐 베이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포트 아서는 영국이 호주를 점령한 초반부, 자국의 죄수들을 보내 가두었던 곳이었다. 포트 아서의 입구에는 죄수들을 '인간적'으로 대했다는 어느 남자에 대한 소개글이 붙어 있었다.
포트 아서까지 오는데는 버스를 탔다. 대여섯 명 되었던 일행들은 거의가 중년이었다. 그들은 강렬한 햇살이 차창을 통해 비쳐내릴 때, 그것에 시선을 던지며 상념에 젖는 거 같았다. 뭐랄까. 두고 온 과거와 미래라는 아득한 시간의 빗장을 열어 그것을 엿보고 있는 듯 했다.
죽은 동물을 이토록 가까이에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의 사체는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간밤, 헤드라이트를 보고 거리에 뛰어들어 차에 치인 왈라비, 웜뱃, 포섬들이었다. 거리에서 죽은 그들은 아무곳에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아마도 하루에 한 번 정도 그 길을 다니며 사체를 옮기는 일을 하는 직원이 지나기 전까지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포트 아서부터 17km를 걸어 포티스큐 베이에 도착했다. 국립 공원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없었다. 나와 J는 비교해도 별반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없는 캠핑장의 어느 다져진 땅을 심사숙고해 텐트를 쳤다.
해가 일렁이며 바다 너머로 지고 있었다. 저녁으로 보리 밥을 먹으려 했다. 불을 지피려 했는데, 장작에 습기가 가득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풀과 작은 가지들로 작은 불을 피워 장작들을 말렸다. 손바닥만한 불길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의 잔 가지들을 주워 계속 부러뜨려 넣었다. 보리는 설 익었다. 보리를 더 익히려 했지만 몇 분 사이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을 거 같았다. 배가 고프니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숲은 어두웠다. 불에 탄 장작은 재가 되어갔다. 찬 공기가 나무 사이를 비집고 어둠과 함께 밀려 왔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다. 왈라비였다. 헤드랜턴을 비추자 4,5미터 근방에 왈라비가 경직된 자세로 멈춰서 있었다. 왈라비는 그렇게 서 있다가, 슬그머니 우리의 동태를 살핀 뒤, 가장 먼 곳에 떨어진 보리를 주워 먹기 시작했다. 나는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왈라비에게 헤드랜턴을 비췄는데, 그때마다 왈라비는 흠칫 놀랐다.
걸음을 옮기며 자리를 뜨자, 불을 지폈던 자리에 왈라비가 서성이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8월 25일(3일 차)
Fortescue Bay Camping Ground <-> Cape Pillar
새벽, 너무 춥다. 상의는 네겹, 하의는 두겹, 모포에 침낭을 덮고 잤지만 추워서 깼다.이틀 연속 추위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바닥의 냉기가 뼛속에 스며들었고 그럴 때면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하루를 시작했다. 비까지 와서 텐트 안은 눅눅했다. 헤드라이트를 켰다. 조그마한 몸을 웅크리고 글을 썼다.
아침 일찍 Cape Pillar로 떠났다. 우갈리Wugalee 캠핑 장까지 가는 데 두 시간 정도가 걸렸고, 한 시간 정도를 더 가서 Hut에 도착했다. Hut에서 하루를 묵은 이들이 떠날 채비를 하며 방을 나서고 있었다. 그들은 모녀, 노부부, 중년 남자 등으로 구성된 무리들이었다. 우리는 가볍게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정상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더 걸어 Cape Pillar에 도착했다. 만을 따라 솟은 절벽에 파란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비가 내린 뒤 뜬 하늘의 무지개가 있었다.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수평선이 두 눈에 가득찼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바삐 걸음을 재촉하다가 붉은 색 폴라티를 입은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풍경이 아름답지 않느냐며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시작된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그 노인이 어떤 이유에서건 타즈마니아의 많은 곳을 여행하며 살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데본포트에 산다는 노인은 한 번 가는 데 7일이 걸리는 overland track을 7번 다녀왔다고 했다. 며칠 뒤 Maria Island에도 갈거라 하니, 꼭 들러볼 곳들을 일러줬다.
노인과 작별 인사를 하고, 한참을 걷다 뒤를 돌아봤다. 노인은 작은 배낭을 벗어 두고 의자에 막 앉으려는 참이었다. 빨간 폴라티를 입은 그녀는 회색과 갈색으로 뒤덮인 그곳에서 돋보였다.
8월 29일 ~ 30일(7 ~ 8일 차)
Maria Island, French Farm, Maria Mountain
바깥에서는 비명 소리 같은, 어느 새의 울음이 울려퍼졌다. 캄캄한 새벽이었다. 온몸을 뒤척이며 다시 잠을 청했다. 시린 공기가 얼굴에 서려, 다시 눈을 떴다. 텐트 밖으로 나왔다. 언덕 저편의 호수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젖은 장작들은 해가 완전히 뜬 뒤에서야 타기 시작했다.
습기에 젖은 텐트를 널어두고, 아침으로 오트밀을 먹었다. Mayay-5년 보증이라 적힌 애플 시나몬 파이와 커피를 마셨다. 설거지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짐을 정리해 배낭을 둘러메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근처의 다른 캠핑장으로 가서 묵을 계획이었다. 캠핑장에 짐을 풀어놓고 섬을 둘러볼 요량이었다. 질척이는 땅을 디디며, 삼 십 여분을 가니, French Farm이 나왔다. Wombat들이 한가롭게 등산을 거닐며 풀을 뜯고 있었다.
부식되어 바스라지는 것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났다. 낡은 철조 구조물에 배낭을 기대어 놓고, 채 마르잖은 텐트를 꺼내 펼쳐 놓았다. 오래된 시간 위로 햇살이 비쳤다. 햇살이 스며드는 낡은 공간의 냄새는 퀘퀘했다. 먼지가 부유하지 않지만, 매캐한 공기가 가득했다.
Robbey's Farm으로 가는 길에 만과 만이 만나 생긴 좁은 길을 봤다. 파도가 잔잔한 곳에서 악취가 났다. Robbey's Farm에 도착해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French Farm에서 14km를 걸어 Darlington으로 왔다.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섬에는 나와 J, 그리고 레인져와 어느 연구자 뿐이라고 했다.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하루는 건물 안에서 묵어가기로 했다.
따뜻한 화로가 있는 건물 안에 있다. 150여년 전 죄수들이 감방으로 썼다는 곳이다. 긍정할 수 없는 시간의 흔적들이 외벽 곳곳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얼굴을 알 수 없지만,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의 몸짓이 떠오른다. 그들도, Maria Mountain에 올랐을까.
Maria Mt에서 돌아오는 길, 비가 내렸다. 마치, 세상에 종말이 이미 고해진 것처럼, 암울하며 폐허같은 먹구름과 함께. 하마터면 바위를 기어오르는 산 정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뻔 했다.
9월 2일 ~ 3일(11 ~ 12일 차)
Freycinet Camping Ground -> Hazard Beach -> Wineglass Bay
캠핑장에서 처음으로 함께 캠핑하는 이들을 만났다. 경계와 환대의 의미를 담아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했다.
와인 글라스베이에는 마실 물이 없다. 근처 냇가의 물을 정화해 (필터+끓이기) 마시는데 수질이 그리 좋지 않다. 물색이 노랗고, 악취가 난다. 물을 끓이니 괜찮아지는 것 같았는데, 하얀 기포가 냄비 곁에 길다랗게 말라 붙었다.
텐트는 작은 꽃대가 달린 이름 모를 나무 아래에 쳤다. 바람이 불면, 하얗고 노란 꽃대들이 텐트 위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었는데, 실제로 비가 올 때 보니 나무 아래 텐트를 치기로 한 건 꽤나 괜찮은 판단이었다.
간밤 캠프장에 커플 둘이 함께 머물렀다. 낭만적인 이 공간에서 몸을 섞지 않는 이들은 우리 둘 뿐이었다. 아니, 낭만적이기라기 보다는 그저 하릴 없이 흘러가는 이 밤에, 서로의 눈을 바라보거나, 어둠 속에서 어떤 진심을 고백하거나, 꼭 붙어 있는 옆 사람의 온기를 느끼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건, 우리 뿐이었다.
새벽 네시 반, 아침으로 오트밀을 먹고 Mountain Grahm으로 걸었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낀 날씨 때문에 정상에 거의 올라서도 풍경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무릎 높이까지 자란 ,풀에 맺히 물방울에 바지와 신이 흠뻑 젖었다. 나는 결국 중도 하산을 결심, J는 Mountain Freycinet을 지나, Cook's Beach, Winglass Bay를 거쳐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생존과 낭만 사이, 그 애매한 상태가 반복됐다. 해가 지면 잠에 들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됐다. 하루 열 시간 정도를 자는 거 같다. 파도가 치는 바다를 머리 맡에 두고 자기를 반복하다보니 그 소음이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다.
타즈매니아로 오기 전 이력서를 넣었던 공장에서 인터뷰를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예정보다 캠핑을 조금 일찍 마치기로 했다. 카드 게임이라도 했어야 했나. 해가지면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그렇게 텐트 안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카드 게임이라도 할 걸,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잠을 잔 거 같다. 밤을 좀 더 알차게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9월 4일(13일 차)
Freycinet Camping Ground -> Freycinet (Illuka Backpakers)
배낭의 무게에 뒷목이 당겼다. 혹자는 배낭 끈을 잘못 조절한 것이라 하겠지만, 허리를 펴면 배낭은 알맞게 자리를 잡았다. 다만,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었을 뿐이다.
와인 글라스 베이는 투명한 바닷물을 간직한 곳이었다. 모래 아래로 빠져드는 두 신을 벗어두고, 맨발로 해변가를 걸었다.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사람들 속에서 걷기를 격려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다른 누군가보다 힘들게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바보 같은 일이지만, 기분을 조금 우쭐하게 했다.
사진으로 이미 본 풍경, 그것도 최적의 날씨와 뷰포인트에서 촬영되고, 포토샵으로 보정된 아름다움을 기대하고 현실에서 동일한 대상을 바라보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와인글라스베이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때는, 사진에서는 보지 못했던 햇살이 비치는 투명한 바닷물에, 두 발을 직접 담궜을 때였다.
호스텔로 가는 길, 타이완에서 왔다는 한 커플이 차를 태워주겠다며 뒷문을 열었다. 와인글라스베이 뷰 포인트에 오르며 마주쳤을 때, 잠깐 인사를 나누던게 인연이 되었던 거 같다. 한 시간을 넘게 걸을 거리를 단 5분만에 왔다.
9월 초, 아직은 비수기인터라 근처의 식당은 한산했다. 처음 Freycinet에 도착했을 때 들렀던 가게는 맛이 없고, 재료가 신선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 옆의 작은 가게에 들러, Lamb Burger를 먹었다. Lamb에 Mint가 곁들여지니, 아주 맛이 좋았다.
허름한 호스텔로 돌아와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미안하게도, 20분이 넘도록 따뜻한 물 아래서 빠져나오질 않았다. 곳곳에 갈라졌던 살들이 온기에 부드러워졌다. 저녁거리로, 우동과 햄, 달걀과 초콜릿을 샀다. 근처에 있는 Pub에서 맥주도 샀다. 해가지는 시각, 노을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마치며
영화 <와일드>를 보고 패기 하나로 떠났던 여행이었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하겠지만 지나고나니 즐거웠던 추억이 됐다. 타즈매니아는 뭐랄까. 한국에도 산이 많지만 보다 야생의 느낌이 더 강했다. 동물들도 많이 만날 수 있고. 또, 호주 메인랜드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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