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18:1~2)
우리는 때로 어찌할 수 없는 환난을 겪는다. 노력의 결과가 실패일 수도 있고, 갑작스레 실직을 하거나 부도가 날 수도 있고, 사기를 당하거나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환난이라는 결과가 나의 의지 밖에 속수무책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밖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내가 아닌 나 밖의 더 큰 세계를 다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내 주눅이 들고,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만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 앞에서 인간은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대부분 환난을 겪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들은 무리한 꿈을 꾸었고, 이뤄질 수 없는 변화들을 갈망했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에게 냉대를 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욕을 먹고, 심한 경우에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은 말이다.
그러나 그 신념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로울 수 있는, 이제껏 이뤄진 적이 없는 하나의 꿈 같은 것이라면 이를 지키고 행동하려 하는 것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가 숱한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기어코 진보해올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물론, 너무도 많은 신념들이 쉽게 긍정되고 정당화되어 왔다. 그 결과는 보통 전쟁과 착취라는 역사적 사건 뿐만 아니라, 일상의 차별과 배제, 폭행 등으로 나타났다.)
2천년 전 이 땅을 다녀간 예수의 외침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은 그가 모두를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며 이를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을 향한 꿈은 어쩌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만큼 생생하게, 사랑의 가치를 꿈꾸고 이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이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걸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꿈꾸기를, 그리고 이를 실천해 가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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