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퍼키스 <사진 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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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간다. 눈길을 끄는 사진 앞에 선다. 그것을 5분 동안 바라본다. 사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 연습1. 바라보기, p.15 사진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꽤나 드문 경험이 됐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진은 인터넷 상에서 소비되는데, 유통의 대표주자격인 소셜 미디어는, 점점 더 빠르게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뭐, 이미지의 빠른 소비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사진들을 보며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많은 사진 중에서 이목을 끄는 사진들을 쉽게 가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진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닌 감상하려 할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고, 우리는 그것을 찰나에 인식하기도 하지만 때로 사진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시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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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무엇인가? 보통, 시간 하면 직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고 종교나 다른 차원을 이야기 할 때만 직선적이지 않은 시간의 특징을 이야기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시간은 (여기에 공간을 더하면) 광원뿔 형태로 이뤄져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25세에 깨달았는데, 10년 뒤 그는 장소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다름을 알게 된다. '시간은 유일하지 않으며,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 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기 다른 리듬을 갖는다.(p.98)'는 것이다.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이란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 간의 관계, 이 관계들의 동적인 구조 양상이다.(p.222)'이라 정의한다. 무슨 말일까? 저자에 따르면 시간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양자화되어 있다. 여기에는 흐름이나 질서가..
X,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 자크 엘룰 <뒤틀려진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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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의 외벽, 네온 사인을 통해 반짝 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사랑은 너무도 쉽게 왜곡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타인이 정의될 수 없는 것처럼 정의될 수 없는 활동이다. 정의될 수 없다는 건, 특정한 범위에 한정될 수 없다는 것, 또 그래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과 '사랑'이 정의되고 있지는 않은가. 자크 엘룰은 기독교가 뒤틀렸다 말하며, '신학자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적,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문제들에 대한 답을 성경 본문에서 찾고자 했'음을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성경의 메시지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필요에 의해 사용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독교는 시대에 부합..
두 망나니의 여행 이야기: 잭 케루악 <길 위에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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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잭 케루악 를 읽었다. 이것이 '드디어'인 이유는, '드디어' 3주 만에 1, 2권을 다 읽고 지금 이 글을 쓴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번에 중고 서점에서 를 사 오기 훨씬 전부터 책의 제목을 좋아하여,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까지 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를 읽어보고자 했던건, 책 속의 주인공 샐이 말하듯 '길은 곧 삶이니까.'라는 지극히 평범한 문장과 연관이 있기도 하고, 삶이 어느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굳이 따지자면 매 순간의 길이 곧 목적지라는, 평소 생각을 대변하는 적절한 문구였기 때문이다. 불꽃치듯 요동치는 그들의 심장 소리와 열정, 그것을 표현하는 잭 케루악의 때로는 길고도 지루한, 잡담들이 가득찬 아주 긴 문단들이 이 책에 널브러져있다. 책을 읽기 전까..
좋은 건축, 좋은 공간에 대한 고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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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 보면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도시들이 있었다. 그러한 도시들에는 한결같이 사람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공간이 있었다. 도시의 특성상 자연과도 완벽히 어우러진 도시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하는 공원과 강,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침마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이 있었다. 그럴 때면, 그곳에 사는 이들이 참 축복 받았다 생각하며 그저, 부러워 하곤 했었다. 건축물과 공간, 그리고 아파트 하나의 건축물은 벽을 쌓고 구분을 통해 단절된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건축물=아파트를 볼까. 한국형 아파트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내려는 건축물이며, 프라이빗한 공간을 창출한다. 이러한 프라이빗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것이 '프라이빗 할 수 밖에 없다'는..
반려 관계에 대하여 : 김애란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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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개가 키우고 싶었고, 조금 자라서는 고양이가 키우고 싶었지만 실제로 키워본 적은 없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었고, 그러다 혼자 나와서 살게 되었는데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못한 이유는 며칠이고 집을 비우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었다. 소설 속 찬성도 처음부터 개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어쩌다보니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려져 있는 거 같은 개에게 얼음 한 조각을 주게 되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함께 살게 되었다. 찬성이 데려온 개, 에반은 이미 많이 늙어 있었다. 하루하루 쇠약해져 가는 기력 때문에 동물 병원에 찾았다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가난한 찬성은 치료비를 댈 수 없었고,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안락사'를 택해..
<풍경의 쓸모> 김애란: 새로운 바깥과 안을 발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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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김애란의 책을 두 권 샀다. 과 을 샀는데, 책을 펼쳐보기 전까지는 단편 모음집이 아니라 장편 소설인 줄만 알았다. 사실 은 정말이지 첫 부분에 실린 단편 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장편 소설인 줄 알았다. 그래서 문장들을 꼼꼼하게 읽지 않고 슥슥 넘겨가며 읽었는데, 별안간 소설이 끝나버려 다시 되돌아 가 문장들을 읽기도 했다. 을 읽고서 를 읽었다. 단편의 장점이라면 한 번 앉거나 누운 자리에서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전에 김금희 을 읽고서 한 소설가가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쓰나'라고 평했었는데,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동일한 생각이 들었다. * 버스는 '도시가 아니면서 도시가 아닌 것도 아닌' 공간을 한참 가로질렀다. 미분양 아파트와 아웃렛, 비닐하우스와 공장, 공..
문학은 과연 끝났는가 그렇다면 왜 써야 하는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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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대의 철학자였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철학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모든 철학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방대한 유산도 내던지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거나 가정 교사를 하며 살아갔다. 철학에서 완전히 연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철학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라고 깨닫고 16년의 공백을 깨고 나이 마흔에 철학에 복귀한다. 최근에는 문학이 끝났다, 예술이 끝났다고 소동을 벌이며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다. 문학 따위는 결국 경제 과정에 좌우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문학보다는 오히려 공학이다, 과학이다, 라고 말하며 문예비평이나 소설을 써서 일당을 벌려는 작자들이 있다. 이들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