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 <우리 시대의 소설가> ∙ 작가가 빠지는 개인성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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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대 상황을 염두에 두고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튼 김 여사의 내적 리듬을 따라 이어나가라는 말밖에 할 수 없네요. 그 내적인 리듬은 자기 스스로 느끼고 조절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지, 누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간섭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여기에 소설 창작의 철저한 개인성이 있는 것이죠. 그 개인성은 개성이라는 말로 바꿀수도 있죠.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는 13년 동안, 모든 창문과 문을 코르크로 막고 세상의 소음이 일체 들리지 않는 밀폐된 방안에 틀어박혀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하였지요. 그에게는 자기 작품에 대한 바깥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들이 한갓 소음으로 여겨졌을 뿐이지요. 그는 자기 창작 작업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으려는 듯한 자세로 철저히 개인성을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바뀌어야 하는 건 형용이 아니라 명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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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즉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괴로운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하지도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에는 상쾌할까? 어떤 꿈을 꿀까? 길을 걸으면서 무얼 생각할까? 돈?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돈 때문에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아닐 거야. 그러나 어쩌면... 아니, 그것도 알 수 없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중 헤르만 헤세의 에 이어 소설가의 자전적 소설을 연이어 읽게 됐다. 따지고 보면 자..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 절망에서 벗어나는 실존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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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이것이다. 즉, 신 앞에서 혹은 신에 대한 생각으로, 절망에 빠져서 자기 자신이기를 원하지 않는 것, 혹은 절망에 빠져서 자기 자신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는 강화된 연약함 혹은 강화된 반항이며, 죄는 절망의 강화다. - 키르케고르 p.158 1. 카페에 왔습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큼지막한 창을 통해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실내의 온기에 두꺼운 외투를 벗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엇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옆 자리에서 한 여자가 멍한 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헤드셋에서는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을까요. 나는 가방에서 책 한권을 꺼냈습니다. 얼마전 구매한 키르케고르 이었습니다.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많은 책들 중에서 왜 이책을 구매했을..
필립 퍼키스 <사진 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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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간다. 눈길을 끄는 사진 앞에 선다. 그것을 5분 동안 바라본다. 사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 연습1. 바라보기, p.15 사진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꽤나 드문 경험이 됐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진은 인터넷 상에서 소비되는데, 유통의 대표주자격인 소셜 미디어는, 점점 더 빠르게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뭐, 이미지의 빠른 소비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사진들을 보며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많은 사진 중에서 이목을 끄는 사진들을 쉽게 가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진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닌 감상하려 할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고, 우리는 그것을 찰나에 인식하기도 하지만 때로 사진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시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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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무엇인가? 보통, 시간 하면 직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고 종교나 다른 차원을 이야기 할 때만 직선적이지 않은 시간의 특징을 이야기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시간은 (여기에 공간을 더하면) 광원뿔 형태로 이뤄져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25세에 깨달았는데, 10년 뒤 그는 장소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다름을 알게 된다. '시간은 유일하지 않으며,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 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기 다른 리듬을 갖는다.(p.98)'는 것이다.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이란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 간의 관계, 이 관계들의 동적인 구조 양상이다.(p.222)'이라 정의한다. 무슨 말일까? 저자에 따르면 시간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양자화되어 있다. 여기에는 흐름이나 질서가..
X,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 자크 엘룰 <뒤틀려진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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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의 외벽, 네온 사인을 통해 반짝 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사랑은 너무도 쉽게 왜곡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타인이 정의될 수 없는 것처럼 정의될 수 없는 활동이다. 정의될 수 없다는 건, 특정한 범위에 한정될 수 없다는 것, 또 그래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과 '사랑'이 정의되고 있지는 않은가. 자크 엘룰은 기독교가 뒤틀렸다 말하며, '신학자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적,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문제들에 대한 답을 성경 본문에서 찾고자 했'음을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성경의 메시지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필요에 의해 사용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독교는 시대에 부합..
두 망나니의 여행 이야기: 잭 케루악 <길 위에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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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잭 케루악 를 읽었다. 이것이 '드디어'인 이유는, '드디어' 3주 만에 1, 2권을 다 읽고 지금 이 글을 쓴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번에 중고 서점에서 를 사 오기 훨씬 전부터 책의 제목을 좋아하여,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까지 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를 읽어보고자 했던건, 책 속의 주인공 샐이 말하듯 '길은 곧 삶이니까.'라는 지극히 평범한 문장과 연관이 있기도 하고, 삶이 어느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굳이 따지자면 매 순간의 길이 곧 목적지라는, 평소 생각을 대변하는 적절한 문구였기 때문이다. 불꽃치듯 요동치는 그들의 심장 소리와 열정, 그것을 표현하는 잭 케루악의 때로는 길고도 지루한, 잡담들이 가득찬 아주 긴 문단들이 이 책에 널브러져있다. 책을 읽기 전까..
좋은 건축, 좋은 공간에 대한 고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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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 보면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도시들이 있었다. 그러한 도시들에는 한결같이 사람과 건축물이 어우러진 공간이 있었다. 도시의 특성상 자연과도 완벽히 어우러진 도시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하는 공원과 강,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침마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이 있었다. 그럴 때면, 그곳에 사는 이들이 참 축복 받았다 생각하며 그저, 부러워 하곤 했었다. 건축물과 공간, 그리고 아파트 하나의 건축물은 벽을 쌓고 구분을 통해 단절된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건축물=아파트를 볼까. 한국형 아파트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내려는 건축물이며, 프라이빗한 공간을 창출한다. 이러한 프라이빗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것이 '프라이빗 할 수 밖에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