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일상의 모습들 ⏐ 60 ⏐ 일상 에세이
·
기록/일상 에세이
어제는 교회에 갔다가 소모임에 출석했다. 처음 만나는 구성원에 집에 초대를 받았고, 그곳에서 진저 브레드 하우스를 만들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실 생각보다 길어지는 모임에 조금 힘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 어색함도 없잖아 있었고, 영어로 이야기를 했던 터라 몇 시간 지나니 머리가 좀 아팠다. 그럼에도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라이프 셰어링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는 모였었는데, 삶을 나누는 방법은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관념적인 일 뿐만 아니라 함께 같은 공간에 모여 구체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괜시리 생각이 많아졌고, 그대로 집에 들어가려다 근처의 바에 갔다. 이미 몇 번 방문 했던 곳이라 사장님과 안면이 있었고, 위스키를 마시며 이런저런 근황 얘기를..
행복에 대하여 ⏐ 59 ⏐ 일상 에세이
·
기록/일상 에세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렇게 사세요'하고 말하는 책들을 읽을 때면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데 저자가 제시하는 말들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충돌할 때, 그것도 방대한 논리와 근거로 나를 설득해올 때, 어딘가 잘못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좀처럼 보지 않는다. 애초부터 우리는 다른 삶의 맥락에 놓여있고, 또한 행복에 대한 정의도 다른데 과연 그대의 말이 내게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 인생은 수학이 아니라 문학에 더 가까울 것이라 믿는 나는 행복과 삶에 대한 명쾌한 성공 방정식보다는 황량한 삶의 한복판에서 써내려간 누군가의 진실한 고백 앞에 멈춰서서 더 많이 다짐하고 결심하고 싶어진다. 사실 행복은 내 삶..
첫 금요일 밤 ⏐ 53 ⏐ 일상 에세이
·
기록/일상 에세이
이사하고 첫 번째 금요일을 맞는다. 간만에 또 혼자가 되니 적적한 감이 없잖아 있다. 그냥 적적하다고 적으면 될 걸 뭐 이렇게 꼬아서 쓰나 싶지만, 여전히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익숙치 않나 보다. 애니웨이. 적적해진 김에 다른 일을 열심히 하게 되었는데, 어제 오늘 새로운 곳에서 면접을 봤다. 프리랜서로 같이 일하자는 곳 하나. (원래는 상하이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있지만 원격 근무도 한 번) 검토해 보고 연락주겠다는 풀타임 자리 하나. 그리고 다음 주에 면접 보자는 곳이 하나 더 있다. 한 곳은 내가 먼저 지원한 곳이고, 다른 두 곳은 먼저 연락이 왔다. 회사를 옮기던지 퇴사를 하고 싶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급여 빼고는 그닥 일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돈' 말고는 사업의 목적성에..
작업실을 얻다 ⏐ 52⏐ 일상 에세이
·
기록/일상 에세이
서울로 이사했다. 합정역 근처에 작업실을 하나 얻었다. 아직까지는 뭐 없이 황량한 공간이다. 일도 하면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수십 개의 방을 본 결과 결국 이곳으로 정했다. 서울에서 작업실 찾기 처음에는 자취의 명소인 관악구 서울대입구 입구역과 신림 근처에서 방을 하나 얻고 사당이나 강남 근처의 공유 오피스에 다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월 100 정도의 고정 비용이 나간다. 문제는 요즘 월세 매물들 가격이 폭등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는 5,60만원이나 할까 싶어 보이는 방들의 월세가 7,80이 되어 있었다. 결국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했고 직방과 다방, 네이버 부동산, 피터팬 등 온갖 앱을 물색하며 이 한 몸 누일 공간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합정 쪽에서 상가..
사랑하는 J에게 ⏐ 51 ⏐ 일상 에세이
·
기록/일상 에세이
J. 너도 알다시피 살아가며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만을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해. 그러니, 싫어하는 일과 사람에 대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느라 전전긍긍하지 않았으면 해. 물론, 그런 우리에게 참을성 없고 인내심 없는 MZ 세대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도 있겠지. 그치만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도 아니잖아? 세상은 변했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 또한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잖아. 더는 성실하게만, 착실하게만 살아서는 절대 중간도 될 수 없어. 그런 순둥이들은 바보 취급을 받기 십상이지. 아닌 거 같다면, 박차고 나오자. 조금 더 용감해지자구.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거야?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 어쩌면 더 좋은 ..
스마트하다는 말의 함정 ⏐ 일상 에세이 ⏐ 49
·
기록/일상 에세이
대학생 때 들었던 기술 윤리 수업에서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꽤나 흥미로운 질문이었는데, 자율 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커브 길을 도는데 길가 한복판에 사람들이 서있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터라 브레이크를 밟아도 사람들을 쳐서 죽게할 수 밖에 없는 속도이다. 반대 방향은 낭떠러지이다. 즉, 자율 주행 머신은 속도를 줄이다 사람들을 그대로 들이 받든지, 또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을 택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 주행차는 어떤 선택을 하도록 설계되어야 하는가? 아마도 이 질문은 기말 고사 시험 문제였던 거 같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대답했을까.. 충돌 직전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여 공중으로 뛰어오른다는 것 정도로 적었으려나? 그래서 학점이 그랬나 맞았나.. 여튼, 분명한 건 여..
창백한 푸른 점 ⏐ 일상 에세이 ⏐ 48
·
기록/일상 에세이
지구는 광활한 우주 속 하나의 행성이다. 그러나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나타나 '세상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입니다.'라는 혁명적인 주장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물론, 결국에 그들이 맞았다. 그러나 당시 우주의 중심이 자신들이 믿는 신,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들이라는 오만함에 빠져있던 중세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들을 재판대에 올리기까지 했다. 지구를 63억 킬로미터 밖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20여년 전 우주 탐사선이 태양계를 벗어나며 찍은 사진인데, 를 쓴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Blue Dot)'이라 표현했다. 다음은 칼 세이건의 글이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답정너, 계절 ⏐ 일상 에세이 ⏐ 47
·
기록/일상 에세이
아침 해가 뜨는 시각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입춘이 지났고, 어쩌면 저 남쪽 어딘가에는 매화가 피었을지도 모르겠다. 계절은 답정너라 좋다. 이제 겨울의 끝자락이야. 그러네. 많이 추웠지? 곧 봄이야. 응. 계절은 하나의 섭리다. '그러네, 응.'이라고 긍정하며 대답하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속절없이 다가와 안착하는. 작년 봄,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가끔은 혼란스럽다. 아니, 꽤나 자주 혼란스럽다.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와중에 변화하는 계절은 내게 작은 확신과 위로를 준다. 꽃은 피고 지고, 나무는 자라고 죽으며, 계절풍 또한 불어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