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명암 ⏐ 일상 에세이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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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알아채는 건 무척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밝은 햇살 아래에서 한 줄기 빛을 알아채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관계는 명암의 상대적 관계와 같이 상호적이다. 세상에는 완전히 흰 것도 없고, 완전히 검은 것도 없듯이, 관계에도 완전한 어둠과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두운 시절을 지날 때, 한 줄기 빛이 되는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빛이 되는 존재들에 둘러 쌓인 밝은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하루를 밝히는 태양보다 밤 하늘의 별들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밝은 빛에 하루 종일 둘러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길이 있다는 믿음 ⏐ 일상 에세이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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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홀로 자전거를 타고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였다. 당시 나는 2박 3일의 식량을 짊어지고 레인보우 트레일을 지나고 있었다. 여행 첫 날, 예상치 못한 자전거 고장과 심각한 비포장 도로 상태 때문에 예상보다 얼마 달리지 못한 채 산 중턱에서 밤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산에서 헤드라이트 하나를 켜고 광활한 대지를 달리고 있자니,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오전에는 드문드문 차가 오가기도 하는 길 한복판에 텐트를 치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지도에 봐두었던 호수까지 이를 악물고 달리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예상보다 몇 시간을 더 걸려 한밤 중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자,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쓰러지고 말았다. 그 날 내가 길을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길이 있다는 ..
아침 햇살⏐ 일상 에세이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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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며,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바로 햇살이다. 햇살이 내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에 대해 당장 하나의 이유를 꼽지는 못하겠다만, 나의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 곳곳에는 따스한 햇살이 함께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햇살'하면, 차분하게 가라 앉은 고요한 지난 기억의 조각들이 망막 뒤에서 반짝인다. 매일 날이 좋아 해가 들지는 않는다. 때로는 구름이 잔뜩 껴서 흐리고, 때로는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때로는 펑펑 눈이 온다. 그럼에도 매일의 해는 그 너머에 어김없이 떠올라 있으며, 오늘처럼 내 방에 한가득 스며들기도 한다. 매일 다른 시각에, 다른 각도와, 다른 온기로 나를 찾아오는 햇살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끔은 이렇게 햇살을 가만히 맞고 있는 순간이 새삼스럽다. 그래서인..
그때의 바다와 나 ⏐ 일상 에세이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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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그 때, 나는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에 살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바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은 아니었지만, 집을 나서서 골목길에 접어들면 하늘의 색에 따라 때로는 푸르게, 때로는 잿빛으로 물드는 바다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곳의 바다는 인기많은 해수욕장도, 그렇다고 경치가 좋은 바다는 아니었다. 다만, 동네의 어선들이 드나드는 작고 쓸쓸한 항구가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부둣가를 따라 등대 끝까지 걸어가면 테트라포드가 겹겹이 쌓인 길의 끝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도, 길도, 바다도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곳에 가만히 앉아 노트와 펜, 카메라를 꺼내들곤 했다. 그렇게 바다 사진을 찍고, 떠오르는 질문에 다르게 답해보려 애쓰며, '바다'와 바다의, '나'와 나의 좁혀질 수 없는 간..
철 지난 다이어리에 글쓰기 ⏐ 일상 에세이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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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서울의 어느 원룸에 살 무렵, 작업 공간이 필요했던 나는 매일 같이 스타벅스에 갔다. 그러다 연말이 되었고, 프로모션 스티커를 모아 내년의 다이어리(이제는 작년이 된)를 받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연말 선물로 받은 듯한 이 청록색 다이어리를 새로운 생각과 경험들로 빼곡히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니까 배낭을 메고 집을 떠날 당시, 배낭의 맨 위에 넣어두었던 이 다이어리의 여백들이 설렘으로 가득한 여행의 순간들로 채워질 줄 알았다. 그러나 부푼 마음으로 낯선 땅에 도착한 어느 여행자는 이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결국 다이어리의 삼분의 일도 채우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계획대로라면 다이어리에는 인도를 시작으로 중앙아시아, 발칸 반도와 중동의 이야기를 기록하..
익숙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하여 ⏐ 일상 에세이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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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낯선 도시나 해외로 홀로 여행을 떠날 때면 이방인이 된 나를 발견하곤 했다. 세상은 본래부터 나와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낯선 환경 속에서 이내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러한 고립감은 낯선 이방인을 향하는 무관심한 시선을 통해 가중되곤 했다. 여행 중에 만난 인연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러한 만남의 순간을 통해 비로소 고립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될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만났던 인연들을 기억해 본다. 누군가와는 사랑을 했고, 누군가와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며, 누군가와는 짧게나마 함께 여정을 같이 했다. 낯선 곳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되는 모든 소중한 인연 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무척이나 소중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에게 ⏐ 일상 에세이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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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가끔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이들을 우연히 발견하곤 한다. 구글 SEO 최적화와는 거리가 먼 글들이라 대부분 검색에는 걸리지 않는, 어쩌면 돈 안되는 이야기들 적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터넷 상에 글을 써왔다. 그러니까 거의 처음으로 나만의 노트북을 갖게 되었던 스무살 무렵부터 적어도 10년이 넘게 글을 써왔다. 그래서 글을 잘 썼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싸이월드가 한창이던 때는 새벽 3시, 나만의 감성 터지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가 다음 날 지우기 일쑤였고, 페이스북이 인기있던 때도 다음 날 이불킥을 차기 일쑤였다. 지금에야 그런 글을 잘 공유하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 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아마도 ..
밤의 산책 ⏐ 일상 에세이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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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일상 에세이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제는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난 학창 시절 이야기들을 하나 둘 꺼내 보다,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새롭게 건축되고 있던 아파트들에 둘러 쌓인 가을 골목의 풍경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던 연인들. 가맥집 앞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담뱃재를 털어내는 아저씨들. 마스크를 쓴 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가족들을 우리는 지나온 터였다. 어둠을 밝히는 조명을 따라 산책길이 이어졌고, 한 걸음 내딛는 발 아래에서 느껴지는 작은 나무다리의 떨림을 새삼스러워하며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어느새 호수를 한 바퀴 다 돌았고, 연꽃잎이 듬성듬성 보이는 호수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좁고 으슥한 길로 들어섰다. 시지푸스의 밤은 어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