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일상 에세이
구체적인 일상의 모습들 ⏐ 60 ⏐ 일상 에세이
어제는 교회에 갔다가 소모임에 출석했다. 처음 만나는 구성원에 집에 초대를 받았고, 그곳에서 진저 브레드 하우스를 만들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실 생각보다 길어지는 모임에 조금 힘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 어색함도 없잖아 있었고, 영어로 이야기를 했던 터라 몇 시간 지나니 머리가 좀 아팠다. 그럼에도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라이프 셰어링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는 모였었는데, 삶을 나누는 방법은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관념적인 일 뿐만 아니라 함께 같은 공간에 모여 구체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괜시리 생각이 많아졌고, 그대로 집에 들어가려다 근처의 바에 갔다. 이미 몇 번 방문 했던 곳이라 사장님과 안면이 있었고, 위스키를 마시며 이런저런 근황 얘기를..
행복에 대하여 ⏐ 59 ⏐ 일상 에세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렇게 사세요'하고 말하는 책들을 읽을 때면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데 저자가 제시하는 말들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충돌할 때, 그것도 방대한 논리와 근거로 나를 설득해올 때, 어딘가 잘못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좀처럼 보지 않는다. 애초부터 우리는 다른 삶의 맥락에 놓여있고, 또한 행복에 대한 정의도 다른데 과연 그대의 말이 내게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 인생은 수학이 아니라 문학에 더 가까울 것이라 믿는 나는 행복과 삶에 대한 명쾌한 성공 방정식보다는 황량한 삶의 한복판에서 써내려간 누군가의 진실한 고백 앞에 멈춰서서 더 많이 다짐하고 결심하고 싶어진다. 사실 행복은 내 삶..
비옥한 마음 ⏐ 58 ⏐ 일상 에세이
1.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들이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노래, 그렇다고 축 처지지도 않는 노래. 마음을 담아 사랑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 내겐 Hillsong 가 그렇다. 2. 좋은 작품은 언제나 사랑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을 얼마나 많이도 되뇌었는가. '사랑. 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꿈. 그럼에도 불구하고..' 3. 얼마전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다.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이지 사랑과 꿈을 가진 (적어도 이를 좇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아무것도 진실로 사랑하지 않고 있었고, 아무것도 진실로 꿈꾸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등 떠밀려 그냥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4. 지..
초라했던 하루 ⏐ 57 ⏐ 일상 에세이
오늘의 나는 너무도 초라했다. 프로젝트 팀원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횡설수설하는 했던 이유는 결국 실력과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리더는 아니라고, PM은 아니라고 공표했음에도 결국 내가 하(려)고 하는 행동은 리더이고 PM인 거 같아서 스스로가 참 편안한 선택만을 하려는 거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맡아서 하던가, 비키던가. 그러나 무언가를 이끌어본 적도 사실 너무 오래되었고 무엇보다도 현 시점에서는 역량이 부족했다. 그것들을 커버해 줄 겸손함이나 따뜻한 마음씨도 이젠 내게 희미해진 가치들이었다. 그렇다고 비키기에는 그럼 누가 할까?하는 초조함과 회의적인 마음이 있었다. 이끌거면 확실히 이끌어야 한다. 아니라면, 확실히 빠져서 다른 이들에게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너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
흑백 사진 ⏐ 56 ⏐ 일상 에세이
흑백 사진을 좋아했다. 색상에 반응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피사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풍경이든. 흑백에 담긴 세계는 흥미로웠다. 그럴리 없었겠지만 세상이란 것을 조금 더 제대로 보는 느낌이었고,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듯 했다. 카메라를 하나 들고 발길 닿는 대로 걷기를 좋아했던 나는 남들이 다 아는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힙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후미진 골목과 인기척 없는 뒷산에 오르곤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온 날에는 수 십 장의 고요한 흑백 사진이 메모리 카드에 가득 차 있었다. 흑백 사진을 찍으면서 알게 된 건 검정은 단순한 검정이 아니고, 하양은 단순한 하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둠은 단순한 어둠이..
연희동 포셋 POSET: 아날로그적 글쓰기를 위한 공간 ⏐ 55 ⏐ 일상 에세이
연희동에 있는 포셋 POSET 에 다녀왔다. 엽서와 편지지를 함께 파는 곳이었는데, 인스타그램 피드에 떠서 우연히 저장을 해놨던 곳이었다. 언뜻 보면 특별할 거 없어보일 수 있는 이 공간이 특별했던 건 안쪽에 편지를 쓸 수 있게 하는 공간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곳에서 직접 편지를 쓰시는 분도 있었고, 또 반대편에는 사물함이 있어서 무언가를(아마도 편지를)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단순히 엽서나 편지지를 파는 곳이 아니라,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공간에 참여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것도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또 다른 이유로 이 공간은 인상 깊었는데, 그건 내가 아날로그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보통 노트북으로 글을 쓰지만 때로는 종이 위에 글을 쓴다. 그런데 쓰고 ..
슬럼프와 걱정을 극복하는 방법 ⏐ 54 ⏐ 일상 에세이
를 쓰며 세계적인 작가가 된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다음 책을 쓰며 작가로서의 부담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전에 명성에 걸맞는 좋은 책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원하는 글을 계속 쓸 수 있었을까? 그녀는 솔직히 말해 두렵고 걱정이 됐다고 했다. 창의성에 대하여 작가는 글쓰기 실력과 더불어 창의성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런데 이 창의성이라는 것에 대한 관점이 현대와 고대에는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를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고대에는 창의성은 외부에서 오는 '영감'이자 '신성한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창의적이라는 것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존재 바깥의 '신성한 무언가'였다. 그러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며 우주의 중심에 인간이 서게 되었고..
첫 금요일 밤 ⏐ 53 ⏐ 일상 에세이
이사하고 첫 번째 금요일을 맞는다. 간만에 또 혼자가 되니 적적한 감이 없잖아 있다. 그냥 적적하다고 적으면 될 걸 뭐 이렇게 꼬아서 쓰나 싶지만, 여전히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익숙치 않나 보다. 애니웨이. 적적해진 김에 다른 일을 열심히 하게 되었는데, 어제 오늘 새로운 곳에서 면접을 봤다. 프리랜서로 같이 일하자는 곳 하나. (원래는 상하이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있지만 원격 근무도 한 번) 검토해 보고 연락주겠다는 풀타임 자리 하나. 그리고 다음 주에 면접 보자는 곳이 하나 더 있다. 한 곳은 내가 먼저 지원한 곳이고, 다른 두 곳은 먼저 연락이 왔다. 회사를 옮기던지 퇴사를 하고 싶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급여 빼고는 그닥 일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돈' 말고는 사업의 목적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