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일상 에세이
익숙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하여 ⏐ 일상 에세이 ⏐ 29
낯선 도시나 해외로 홀로 여행을 떠날 때면 이방인이 된 나를 발견하곤 했다. 세상은 본래부터 나와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낯선 환경 속에서 이내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러한 고립감은 낯선 이방인을 향하는 무관심한 시선을 통해 가중되곤 했다. 여행 중에 만난 인연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러한 만남의 순간을 통해 비로소 고립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될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만났던 인연들을 기억해 본다. 누군가와는 사랑을 했고, 누군가와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며, 누군가와는 짧게나마 함께 여정을 같이 했다. 낯선 곳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되는 모든 소중한 인연 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무척이나 소중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에게 ⏐ 일상 에세이 ⏐ 28
가끔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이들을 우연히 발견하곤 한다. 구글 SEO 최적화와는 거리가 먼 글들이라 대부분 검색에는 걸리지 않는, 어쩌면 돈 안되는 이야기들 적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터넷 상에 글을 써왔다. 그러니까 거의 처음으로 나만의 노트북을 갖게 되었던 스무살 무렵부터 적어도 10년이 넘게 글을 써왔다. 그래서 글을 잘 썼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싸이월드가 한창이던 때는 새벽 3시, 나만의 감성 터지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가 다음 날 지우기 일쑤였고, 페이스북이 인기있던 때도 다음 날 이불킥을 차기 일쑤였다. 지금에야 그런 글을 잘 공유하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 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아마도 ..
밤의 산책 ⏐ 일상 에세이 ⏐ 28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제는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난 학창 시절 이야기들을 하나 둘 꺼내 보다,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새롭게 건축되고 있던 아파트들에 둘러 쌓인 가을 골목의 풍경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던 연인들. 가맥집 앞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담뱃재를 털어내는 아저씨들. 마스크를 쓴 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가족들을 우리는 지나온 터였다. 어둠을 밝히는 조명을 따라 산책길이 이어졌고, 한 걸음 내딛는 발 아래에서 느껴지는 작은 나무다리의 떨림을 새삼스러워하며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어느새 호수를 한 바퀴 다 돌았고, 연꽃잎이 듬성듬성 보이는 호수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좁고 으슥한 길로 들어섰다. 시지푸스의 밤은 어떠..
생각과 삶⏐ 일상 에세이 ⏐ 27
생각은 생각한다고 해서 발전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라는 것도 실은 생각을 통해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지식과 경험이 조합되는 과정이다. 생각만 해서는 발전이 없는 이유다. 좋은 생각, 위대한 사유,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그저 ‘생각’에서 탄생할 수 없다. 실제로 생각, 혹은 사유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서 유유자적하기와 유사하다. 생각과 사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직간접적인 경험이 부재한다면, 결국 자신을 자신 안에 가두는 일을 반복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생각이 깊다’는 표현은 곰곰히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계속해서 더 많이 생각해고, 그렇게 더욱 자신을 돌아보다 결국 자기에게 갇히고 마는 이들을 종종 본다. ..
뉴스 댓글 안 보기: 정보는 명령이다 ⏐ 일상 에세이 ⏐ 26
뉴스를 보는 일은 꼭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뉴스 댓글은 안 보는 게 더 좋다. 생각을 획일화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 기사가 생각의 프레임을 먼저 제한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프레임을 지적하는(혹은 더 나은 생각과 판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사 만큼이나 많이 노출되는 댓글은 그저 극단적으로 치우쳤을 때가 많다. 조중동이 나올 때, 한경오가 나올 때, 미통당, 더민주당이 나올 때 등등. 대부분의 댓글들의 반응은 포털 사이트 별로 정해져있다. 포털 사이트들은 이러한 댓글 섹션을 없애는 게 낫지 않을까? 얼마 전 다음은 연예인 기사에서 댓글 목록을 삭제했다. 악플로 연예인들이 받는 고통을 감안해서다. 정치나 사회 섹션도 댓글을 없애도 되지 않을까? 그곳에서 과연 얼마나 그럴싸한 ..
서른, 생일 ⏐ 일상 에세이 ⏐ 25
'휘갈겨 쓴 이 글을 다시 고쳐쓰지는 않으려 한다. 계절처럼 때로는 그저 흘러가야 할 것이므로.'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최선을 다해왔다고 믿었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본다. 부끄럽다. 많은 것을 알았다 생각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생의 비극은 그것이 결국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앞두지 않고는 좀처럼 삶을 마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계절처럼 흘러간다. 내 나이도 이제 꽉찬 서른이 되었다. 나이를 계절에 비유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모든 계절의 소중함은 그것이 소중한 이들과 각기 다른 순간의 결을 빚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니 따스한 봄날이 아니더라도, 선선한 가을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든 계절에 함께 행복할 수 있다. 그..
요가 매트만큼의 행복 ⏐ 일상 에세이 ⏐ 24
누군가 내게 얼마나 큰 행복을 느끼고 싶냐고 묻는다면, 요가 매트만큼의 행복이라고 대답하겠다고 조금 전 요가 매트에서 운동을 하며 생각했다. 물론 나는 요가를 전혀 할 줄 모르지만, 플랭크를 할 요량으로 얼마 전 요가 매트를 구매한 바 있다. 지난 날 버거운 현실 속에서 가슴이 무거운 날이 올때면, 나는 운동을 하곤 했다. 운동은 언제나 외부에서 경험한 부정과 거절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게 운동이란 숱한 부정과 긍정 이전에 존재하는 나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었다. 몸과 마음이 유독 뻐근한 저녁. 요가 매트를 꺼내 운동을 했다. 뭉쳤던 몸이 풀리니 신기하게도 굳었던 마음도 조금씩 풀리는 거 같았다. 그러다 문득 요가 매트만큼의 행복이란 문구가 머리를..
환난과 성경의 인물들, 시편 18편 1~2절 묵상 ⏐ 일상 에세이 ⏐ 23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18:1~2) 우리는 때로 어찌할 수 없는 환난을 겪는다. 노력의 결과가 실패일 수도 있고, 갑작스레 실직을 하거나 부도가 날 수도 있고, 사기를 당하거나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환난이라는 결과가 나의 의지 밖에 속수무책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밖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내가 아닌 나 밖의 더 큰 세계를 다시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내 주눅이 들고,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만다. 그럴 ..